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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표 '꾸준함의 대명사 그가 그리워'
    축구선수&감독 2012. 10. 18. 11:18


    이영표가 국대에서 은퇴한 것에 대해 상당히 아쉽게 생각합니다.박지성보다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덜받았지만 이영표의 실력만큼은 박지성 못지않은 월드클레스 선수였지요.제가 이영표선수를 처음본것은 약10년정도 전입니다.그는 영리한 윙어였죠.당시에 보통윙어들은 빠른스피드를 이용한 치고달리기로 상대수비를 제끼는 유형이었는데 이영표선수는 순간적인 기술로 상대수비를 농락하는 선수였죠.

    지금의 전매특허인 헛다리짚기를 예전에도 보면서 한국에도 개인기를 쓸 줄아는 선수가 존재하는구나 했었습니다.(물론 박진섭이라는 윙어도 있었지만..당시에 이영표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유망주라고 생각했었습니다.)이영표를 좋아하게 된것은 2002년도 월드컵때였습니다.당시 그의 움직임은 참 빛이 났었죠.왼쪽측면에서 헛다리짚기로 상대를 농락하는 것은 보는이들을 즐겁게 했죠.(2002년 월드컵시절에 좌-영표 우-종국 은 잊기힘들정도로 활약이 엄청났었죠.)

    이영표는 2002년 포르투갈전에 박지성의 골을 어시하는 주인공이었고,박지성의 골에 가려지긴 했지만 대한민국 첫16강은 그의 발에서 만들어 졌습니다.(이때부터 박지성의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군요.)그리고 8강 이탈리아 전 연장전 동점상상황에서 안정환의 골든 골이 터지며 대한민국은 4강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역시나 스포트라이트는 안정환이 다 받긴했지만 후방에서 안정환에게 크로스를 올려준 남자는 바로 이영표였죠.)

    이영표의 어시로 2002년도 16강,4강에 진출할수있었다 해도 무리는 아닐겁니다.아주 중요한 골을 어시스트했기때문이죠.저는 그때부터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월드컵이후 네덜란드 PSV입단
    이영표는 2003년 1월 희딩크를 따라 네덜란드로 떠나게 됩니다.팀은 바로 네덜란드 명문팀인 PSV였고,6개월 임대후 완전이적 방식으로 입단하게 되었죠.같이 입단해 PSV에서 부상과 적응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박지성과는 달리 이영표는 많은 적응이 필요치 않았죠.

    PSV에서 왼쪽윙백으로 전환한 이영표는 성실함과 영리한 플레이로 변경된 포지션을 잘 소화했을뿐아니라 팀내에서 입지도 단단히 했죠.그리고 04/05시즌 챔피온스리그에서 PSV가 4강에 진출하는데 당당한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프리미어리거 2호 한국인
    "대한민국 프리미어리거가 나올까?"하는 생각을 해본 축구팬들 많았을 겁니다.2005년 프리미어리그에 박지성과 이영표가 나란히 입성하면서 국내팬들에게 많은 환호를 받았죠.두번째 프리미어리거 이영표는 이번에도 첫번째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는 덜 받았지만 그는 토트넘에서 안정적인 주전윙백으로 이적하자마자 무혈입성을 했습니다.(박지성의 맨유입단이 워낙에 대단한 일이고,수비에 비해 공격이 더 관심을 받기 때문에 이영표로써는 어쩔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세계적인 전문 왼쪽윙백이 구하기 어려운 자원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희소성과는 상관없이 그는 특유의 오버랩핑능력과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토트넘 홈팬들에게 감독인 마틴욜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죠.(전 그의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2명의 수비를 농락하자 홈팬들이 "리~!리~!"를 외치던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련
    인생에서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나 봅니다.2006년 이영표는 이적성사직전 AS로마행을 거절하게 되고,토트넘 구단관계자들에게 미운털을 박히게 되죠.때문에 너무한다싶을 정도로 흘러넘치던 넘치던 선발출장기회가 말라버렸습니다.그리고 2007년 후안데 라모스가 토트넘 새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시련은 더욱 거셌습니다.또 구단에 미운털 박혔을뿐아니라 새감독으로 부임한 라모스는 윙백들의 공격적인 오버랩핑을 좋아했는데 이영표는 팀전체가 공격적이었기에 수비의 균형을 맞추기위해 오버랩핑을 자제했었죠.떄문에 전보다 두들어보이지 못해 보였습니다.당연히 공격포인트랑도 상관없었고 라모스에게 인상적인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죠.(사실 이영표가 오버랩핑을 활발히 하지못했던 이유는 수미형 미드필더가 이영표의 오버랩핑하면 뒤에서 커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또 이영표는 오른발잡이기 때문에 왼쪽킥력이 정교하지 못했습니다.이러한 단점을 전에는 안정적인 수비력과 오버랩핑으로 어느정도 상쇄시켰는데,공격적극 관여하는 윙백의 역할을 부여하는 라모스전술에서 이점이 크게 부각되었던 것이죠.

    결국 주전자리는 신성인 베일에게 내주고,라모스의 살생부에 오르게 되면서 이영표는 2008년 8월 분데스리가 도르문트로 향하게 됩니다.당시에 도르문트에서 주전윙백인 데데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를 영입한것이지요.그는 약1년간 훌륭한 활약을 보여줍니다.하지만 토트넘때처럼 다시 이영표에게 시련이 닥칩니다.데데의 부상복귀한것이죠.결국 이영표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고,당연히 2009년 여름 이적을 하게 됩니다.


    선수생활의 마무리(알힐랄->벤쿠버)
    논란이 있는 이적이긴 했지만 사우디의 알힐랄로의 이적으로 다시 어느정도의 경기감각을 회복하게 되었고,대표팀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다시 보이면서 2010년 월드컵에도 주전으로써 활약을 했죠.그후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대표팀에는 은퇴했지만 2009년 여름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힐랄에서 이적한후부터 현지에서 인정을 받으며 2시즌을 뛰었죠.2011년 여름 MLS(메이저리그 축구)에 있는 벤쿠버화이트캡스FC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 지으러 가죠.역시나 소속팀에서 31경기 1골4어시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인정받으며 뛰고있는 상황입니다.팀내 시즌최고선수후보에 올라와 있기도 하구요.

    은퇴후 이영표가 어떤삶을 살지는 모르겠습니다.감독을 하게 될지 아니면 박지성의 꿈처럼 축구행정의 길을 걷게 될지 그것도 아니면 해설위원이 될지(아니면 축구와 관련없는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영표 특유의 성실함으로 모두에게 인정받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영표 미국에서의 활약상>


     


    개인적인 말
    이영표는 성실함과 꾸준함의 대명사였으며 좋은 인격의 소유자였고 대표팀에서 조용히 맏형노릇을 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그리고 대표팀에서 이영표는 박지성의 주장직이 방해되지 않을까 자신의 의견을 조심할 정도로 배려심많은 남자입니다.하지만 저는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윙백이었고,세계적인 선수였기에 그의 은퇴를 오래 기억할것 같습니다.

    최근 대표팀 경기들을 보면서 아직도 포백의 안정에 상당히 문제가 있어보이며 특히 국대윙백자리는 부동의 주전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윤석영선수가 있지만 이영표선수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대표팀에서 그의 빈자리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대표팀의 든든한 왼쪽자원이었던 꾀돌이 이영표가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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