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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제국의 수호신 드록바
    축구선수&감독 2010. 9. 4. 20:40

    디디에 드로그바 (Didier Yves Drogba Tébily) 
    출생 1978년 3월 11일 (코트디부아르)
    신체 189cm, 91kg
    소속팀 첼시 FC (FW (포워드))
    데뷔 1998년 르 망 UC 입단
     
    드록바의 출발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에서 가난한 부두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축구와 인연을 맺은건 5살 무렵, 어려운 가정으로 삼촌이 살고 있던 프랑스로
    건너온 직후부터였다. 유소년클럽에서 기본기를 익히던 시절 라이트풀백으로
    활약했지만 코스디부아르 국가대표를 역임한 삼촌의 충고로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한다.

    1999년 프랑스 2부리그 클럽 르망의 부름을 받고 4시즌간 활약했다. 잦은부상으로
    경기에 많이 나서진 못했지만 준수한 포스트플레이능력은 24살이던 2001-02시즌
    르샹피오나 소속 깅강에 입단했다.

    02/03시즌 부터 본격적인 활약을 하기 시작하는데 깅강에서 말루다와 투톱으로
    호흡을 맞추며 깅강을 이끌었으며 34경기17골을 터뜨린다.또 드록바는 팀역사상
    최고순위(7위) 달성에 공헌을 한다.


    그리고 마르세유로 이적 동료들의 도움으로 더욱 강해진 그는 03/04시즌 29선발
    5교체로 나와 19골이라는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득점왕 3위에 오른다.
    그의 피지컬,활동폭,포스트플레이,그리고 결정력까지 모두 갖췄기에 빅클럽에서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4년 24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첼시에 입단하게
    된다. 
     
    프리미어리그 적응실패? 드록바가?

    <드록신을 찬양하라~>

    입단후 처음에 그는 프리미어리그에 빠른 속도에 적응을 하지못했고
    잦은 부상도 있었으며 골이 잘 안터지면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자주 시도했으며
    '2400만파운드 짜리 다이버'라는 첼시팬들의 조롱을 받아야 했지만 첫시즌 스텟은
    상당히 우수했다.18선발8교체에 10골5도움이라는 좋은 성적을 냈으나 그의 이적료가
    셰브첸코가 오기전까지 첼시 역대 최고의 이적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팬들은 성이
    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첫해의 무리뉴의 최강 첼시에서 프리미어리그경험
    했으며 다음해인 05/06시즌에 그는 20선발9교체에 12골11도움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첼시의 리그2연패를 이끈다. 그렇게 그의 이적시기와 첼시의 전성기가 열리는 시기가
    맞아떨어졌으며 그의 이적한한해에 무리뉴라는 명장이 첼시에 부임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그러다 2006년 6월 무결점 스트라이커 셰브첸코가 이적해 오면서 그는 첼시를 떠나려고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을 던진다. 그러나 첼시의 감독 무리뉴의 일정량의 출장시간을
    보장하겠다면서 적극적인 만류를 해서 결국 첼시에 남게 되었고 그는 셰브첸코가 이적하자
    더욱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32선발4교체 20골 4도움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른다.
    (반면 셰브첸코는 첼시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먹튀라는 별명과 함께 밀라노로 고개숙이며 떠나는데
    아직도 프리미어리그의 최고의 먹튀에 불명예를 안고있는 셰브첸코다.)
     
    드록바의 위기or태업

    <심판! 너그딴식으로 하면 지옥간다>

    06/07시즌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소속팀은 우승을 맨유에게 빼앗겼고 2007년 9월 시즌중에
    드록바는 자신이 따르는 첼시의 명장 무리뉴의 경질로 상당히 충격에 빠지게 되면서 첼시에서
    상당히 태업을 하게되고 첼시를 떠나고 싶다는 발언을 던지며 상당히 팀분위기를 흐리면서
    첼시에서 그가 떠나길 바라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아브라모비치구단주가 잘못하긴 했지만 드록바같이 첼시의 간판공격수가
    팀분위기를 해
    치는 것이 팬들입장에서 섭섭했는지도 모른다.)

    07/08시즌 부상인지 태업인지 모를 잦은 결장이 있었으며 임시감독인 아브람 그랜트감독이
    부임하면서 17선발2도움 8골6도움이라는 좋은 결과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의 맘은 무리뉴를
    향하여 있었다. 2008년1월 볼튼에 있던 공격수 아넬카를 영입했고 08/09시즌 스콜라리 부임
    하면서 드록바의 자리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스콜라리는 아넬카를 중용하였으며 드록바는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했다.또 첼시의 주포가 드록바 보다는 아넬카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드록바와 아넬카를 같이 기용하려는 스콜라리의 시도가 실패하면서 2009.2월 팀성적을
    이유로 첼시에서 짤렸다.
     
    드록바의 전화위복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2009년2월 거스 히딩크가 첼시에 부임하면서 드록바는
    선수로써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또 히딩크의 도움으로 드록바는 아넬카와 공존
    하게 되면서 그의 공격력은 다시 부활하기 시작한다.그리고  2009년 6월 안첼로티가 첼시로
    부임하면서 09/10시즌 자신의 득점력을 다시 회복하게 되고 첼시의 주포임을 재증명하게된다.

    그시즌의 드록바는 31선발1교체에 29골10도움으로 프리미어리그 2번째 득점왕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더욱 좋은 사실은 드록바의 이런 활약으로 첼시는 맨유에게 빼앗겼던 리그우승타이틀을
    다시 가져왔다는 사실일 것이며 이것때문에 드록바의 득점왕 타이틀은 더욱 빛을 더했다.

    10/11시즌이 시작된 현재 드록바는 3경기 4골3어시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이번시즌에도 유력한 득점왕후보이다.
     
    인간적인 드록바


    <유엔굿월대사를 맡았던 드록바>

    너무 축구부분에만 말했는지 모르겠다.그래서 그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매우
    인간적인축구선수다.2006년 그의 호소로 코트디브아르의 내전한달 휴전에 들어간 예를
    보듯 그의 조국에서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는 첼시군단에 이야기해서
    아프리카에 식료품,의약품등을 지원하였고 본인또한 꾸준한 자선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는 맘이 따뜻한 남자다.2009년에는 팹시광고로 받은 약54억원을 고향인 아비잔의
    종합병원건립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또 그는 나이키 아프리카 교육환경개선과 에이즈
    치료를 위한 캠페인에 동참했으니 아프리카 국민들이 얼마나 그를 좋아하는지 알수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드록바를 왜 신이라 칭하는 지 알것같다. 그리고 그는 축구선수로써 다혈질
    이긴 하지만 그의 가슴은 따뜻한 선수라는 사실도 알수있다.그리고 그의 실력은
     폄화할 여
    지가 없을정도로 진짜다.축구선수로써 인간으로써 더이상 뭐가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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